11회차 전시 이응우 작가 <서식지로서의 자연, 자연과 인간의 해방>

새로운 물결 – 소멸의 미학

New Trends - Ephemeral Aesthetics

 

국제자연미술운동은 한국의 공주에서 시작되었다. 1981년 8월 야투(野投) 창립전 이후 1983년 1월 ‘사계절연구회’에서 “자연미술”을 표방하고 유럽으로 진출해 1990년대는 국내외에서 뜨거운 활동을 했다. 그 결과 우리의 자연미술운동이 전 세계로 알려졌으며 2004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개최하게 되었다.


자연미술운동 10년 후 새로운 미술용어로서 ‘설치미술(Installation)’이 회자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장-특성화 작업(Site-Specific Art)’이 유행하고 최근에는 ‘소멸되는 작업 (Ephemeral Works)’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서구에서 명명된 이러한 신경향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자연미술운동의 특성을 뒤늦게 규정하는 듯 보인다. 그 중에서도 “Ephemeral Works”는 불특정 익명의 장소에서 진행되어온 야투의 현장작업 특성을 정확히 담고 있다. 실제 이 용어를 처음 접한 것도 야투와 영국의 CCANW가 공동기획한 “세계예술유목프로젝트(GNAP-UK 2018)”를 진행했던 2018년이었다. 이 새로운 용어는 다트강(Dart River)을 중심으로 진행된 예술유목과 그해의 주제인 “The Ephemeral River”에서 처음 인용되었다.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예술은 정신활동의 소산이다. 예술작품을 통해 꿈을 이루고 기쁨을 누리며 때로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공자도 “세상 모든 일 다 마치면 예술로 소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 인위의 범람속에 살고 있다. 아무리 예술품이라고 한들 그 또한 인위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예술가 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에 사라져주는 것도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서문


서식지로서의 자연, 자연과 인간의 해방


욕망의 대가

지구는 태고로부터 장구한 역사를 통해 생명의 서식이 가능한 땅으로 변화를 거듭하였다. 인류의 조상은 약 20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한 이래 빠른 인지의 발달과 다양한 도구의 활용을 통해 일찍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수 세기 동안 인류가 도달한 과학기술 혁명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었으나 우리의 터전인 자연계에 가공할 영향을 끼쳐 전 인류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오랜 반성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커녕 날이 갈수록 깊어 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고의 획기적 전환과 새로운 방법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지구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역사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반환점

마라톤은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뛴 정신을 기리며 올림픽의 대표적 경기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경기방식은 구간이동이 아닌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그래서 반환점이 생긴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어떠한가? 과연 반환점이 있을까?

르네상스 이후 수 세기 동안 이룩한 미술의 역사는 당대의 인문학적 성과와 함께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미술은 처음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점차 자연과 무관한 채 우리들의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진전되었다. 이것은 그 이후 미술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하였으나 예술 속 인위의 범람은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의 정서를 위협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현대인의 삶이 자연과 유리된 것과 다르지 않다. 첨단의 과학문명이 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그 안에서 야기되는 각종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1981년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함성과 이를 막으려는 부도덕한 정권의 충돌로 인해 세상이 온통 난리 속일 때 일부의 젊은 예술인들이 미술을 들고 자연으로 들어갔다. 그 후 40여 년을 익명의 자연과 조우하며 그들만의 새로운 방법(자연미술)을 창안하였다. 이른바 친자연적 태도, 자연과의 동행 등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그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활용함으로써 자연이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표현의 목적이 된 것이다. 즉 예술가와 자연이 손을 맞잡은 형국이다. 그들이 즐겨하는 작업은 원시반본(原始反本)으로 비견될 만큼 오늘날 인류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이룩해 놓은 동시대 미술과 전혀 다른 각을 갖고 있다.



자연에 기대는 미술

문명 이전의 인류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살았을까? 고대의 유적들은 –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 끊임없이 우리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인도 북서부 해안 오지를 여행하며 예술유목을 할 때 하루는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따리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는 젊은 친구가 다가와 “당신은 어느 동네서 왔나요?”라고 물었다. “응, 나는 한국이라는 동네서 왔지!”라고 대답했으나 그 친구는 고개를 갸웃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수액 채취하는 젊은이의 세계관은 아직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구석기 동굴 탐험가를 놀라게 했던 웅크린 들소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만 년 전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처럼 공간과 조명 그리고 시각효과 등을 고려하며 작업을 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가 그들을 미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보다 폭넓은 지식과 경험,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리 많은 도구가 새롭게 등장하더라도 자연 자체의 질서는 지배할 수 없다. 나는 일찍이 자연 속에서 작업하며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우치는 즐거움을 얻었다. 나아가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신념도 생겼다. 처음 시작은 자연미술에 관한 문서도 서적도 없고 경험자마저 없었기에 오로지 자연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우군이 있었다면 외롭게 현장연구를 같이 했던 소수의 동료 회원들이 유일했다. 물론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가거나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 시각에서는 같은 경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주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은 창작, 감상, 비평이 소통의 기본이다. 이 구조의 핵심 요소는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다. 작가와 감상자가 만날 때 작품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창조물 또는 소유물이 된다. 즉 주거니 받거니 거래하는 물건이다. 따라서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서 작가가 작품에 우선하는 것은 물론, 창작의 중심에 서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나의 자연미술 작업에 있어서 나와 작품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로 인식된다. 자연이 이미 어느 정도의 미적 상태에 도달해 있고 나는 이를 활용하여 완성된 상태로 진행할 뿐이라는 겸손한 생각이다. 따라서 자연미술의 과정에선 현장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약간의 인위적 손길을 더하거나 나의 손길로 자연물 오브제들을 재구성하더라도 각각의 오브제가 지닌 순성(純性)과 질서를 최대한 고려한다. 그리하여 각각의 작품들은 본래 자연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해 그 아름다움과 질서를 전하는 한 편의 시와 같으며 관객들은 나의 작품을 통해 자연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의 작업은 전 과정을 통해 가능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저절로 되는 이치)의 전통적 개념을 존중하려 한다. 이러한 노력은 물질문명의 인간중심 세계관을 극복하고 자연을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해 서식이 가능한 지구환경을 보존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을 해방함으로써 평화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다. 이 획기적 전환은 수 세기에 걸쳐 공고한 토대를 구축한 ‘자본주의’와 ‘인간중심 세계관’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으나 물러설 수 없으므로 오늘 또 도전장을 낸다.


2023.08. 말복에 이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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