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전시 김태연 작가
점, 선, 색, 이미지, 그 해석과 상상의 세계 혹은 명상의 세계로의 초대
김태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낯설고 미묘한 느낌을 전해주는 색과 형상이 가득 채워진 여러 작업들을 선보이게 된다. 그의 주된 작업 방식은 점과 선을 사용하여 명도와 채도 차이에서 오는 색의 대비가 특징적 인 추상적 이미지의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혹 작가는 현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연 풍경의 사 실적 이미지가 드러나 있는 작업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작업들에 대해 전시 주제를 통해 제시한 것처럼 'colour meditation'이라는 독특한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작업이 색의 명상, 혹은 색을 통한 명상과 관련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것에 대하여 작업을 할 때에는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며 거기에는 희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작업 역시 작업할 때 순간순간의 감정을 손이 가는 대로 그린 작업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명상(冥想)이라는 것은 어두울 명, 그리고 생각 상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말의 의미는 이 눈을 감고 어두움 속에서 깊은 생각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의식과 생각 자체에 집중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비시각적인 부분을 김태연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시각의 영역 안으로 가져오고자 한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본질적으로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 혹은 명상한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유무와 상관없이 본래 시각적일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으며 그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 혹은 감정과도 연결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작가는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는 추상적인 선의 파동과 같은 것을 그려내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점들이 발현되거나 소멸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이와 다르게 이미 뚜렷하게 경험했거나 경험했을 법한 현실 혹은 유사 현실처럼 느껴지는 사실적 풍경 이미지들을 극적인 상황으로 연출해내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추상적이거나 사실적인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작업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이 모든 작업들이 인간의 감각과 사유 그리고 감정의 흐름과 같은 것들이라는 점에서 보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중저 채도의 색을 사용하거나 보색 계열의 색들이 서로 대비되도록 표현함으로써 이질적이고 낯선 감각의 특정한 어느 지점을 향해 작업을 보는 이의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작가가 사용하는 미묘한 색채들 때문인지 초기에는 매우 자극적이다. 그런데 작업을 지켜보게 되면 반복되는 일정한 자극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상으로부터 전해오는 자극 자체에 대한 감각을 점차 둔감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결국 단지 대상에 대해 무엇인가를 감각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의식 자체만을 또렷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또 다른 느낌으로 옮겨지게 된다. 감각 주체는 외부 대상으로부터의 자극을 마중하러 나갔지만 점차 그 자극의 힘이 소멸되면서 그저 감각하는 자신만을 감각하게 되는 모순적 상황을 만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무의식의 자아와 마주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작업들이 무엇인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손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작업한 것이기에 관객들 역시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을 하기 원한다고 하였다. 작가 자신이 작업을 할 때 대상으로부터의 자극에 종속되기 보다는 마치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일체의 외부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점에 이르게 되었던 것처럼 그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들도 그의 작업을 바라보되 대상에 대한 자극, 혹은 이미지 그 자체에 시선을 머무르게 하지 말고 그것 너머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향해 마음의 눈을 다시 한번 떠 보는 새로운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 예술은 시각적이고 현상적인 것들에 토대를 두고 있음에도 항상 그 시각적 영역 너머에 대해서도 시선을 가져가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유사하게 김태연 작가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러한 시각적 현상을 표현해내면서도 일정한 시각적 자극에 의해 반복적 요소들이 드러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함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각적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관객의 시선이 어느 일정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감각의 흐름을 느끼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상으로부터의 자극이 비워진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수동적인 방식으로 감각하는 것 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감각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내게 되었던 것 같다. 즉 우리가 외부로부터 보고 감각하는 것들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이 감각 주체의 해석이자 상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그 해석과 상상의 세계 혹은 명상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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